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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머니꽃 하얀 무궁화
작성자 변영희
작성일 2022-03-27 16:18:08
조회수 267

어머니 꽃, 하얀 무궁화

 

대낮 같이 달이 밝았다. 원능골 산 아래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에도 달빛은 부엌 안까지 깊숙이 침투했다. 아이들은 마을에서 한참 떨어진 냇물에 내려가 큰 대야 가득 물을 퍼가지고 왔다. 그 일에 앞장 선 것은 두석이였고 졸병처럼 뒤따르는 것은 두석이보다 세 살 아래인 점백이였다.

초가집 안방에서는 두석이 아버지가 구들장이 꺼지도록 거푸 한숨을 내쉬고 있다. 깊은 혼수에 빠진 두석이 어머니는 이따금 헛소리를 외칠 뿐이다. 외마디 비명 같기도 하고 혹은 누군가를 호되게 질타하는 것 같기도 했다.

! 허어이! ! 치치 이이…….’

그 소리가 한 번씩 터져 나올 때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험악한 기운이 감돌았다.

어머니의 머리맡에는 우그러진 양은 쟁반이 놓여있고 쟁반에는 다 식어 파리 몇 마리가 교대로 날면서 잠시잠깐 앉았을까 말았을까 한 녹두죽 대접과, 반으로 쪼개진 수박위에 달챙이 놋숟가락 한 개가 얹혀 있었다.

임자! 어여! 눈을 좀 떠보아요!”

두석이 아버지의 목소리에 간곡함이 묻어나왔다. 죽 한 숟갈이라도, 물 한 모금이라도 그 입에 넣어줄 요량이었지만 어머니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아이들은 머리를 맞대고 한참을 수군거리더니 뒤꼍으로 몰려갔다. 두석이가 돌담 근처 무궁화나무 옆에 대야를 내려놓았다.

깨진 색경 조각을 들고 뒤따르는 점백이, 그리고 방굴이와 언년이 만식이 등 동네 아이들 서넛이 두석이의 달빛 사업에 적극 가담했다. 그 밤 깨어 있는 것은 달빛과 아이들, 그리고 안방에서 어머니에게 수박 한 조각, 죽 한 숟갈을 권하는 두석이 아버지와 초가집 뒤란의 무궁화나무 두 그루뿐이었다.

무궁화나무 두 그루 중 하나는 보랏빛 꽃을 피웠고 또 한 그루는 하얀 색깔의 겹 무궁화나무였다. 사람들이 모두 피난을 떠났어도 무궁화 꽃은 기죽거나 슬퍼하지 않았다. 두석이네가 떠나온 C시의 집에도 무궁화나무는 하얀 꽃을 피웠다. 화단 중앙에서 조금 비켜난 울타리 쪽에 심겨져 연달아 꽃을 피우는 모양새였다. 겹으로 피는 무궁화 하얀 꽃은 푸른 초원에 하얀 비단을 점점이 얹어 놓은 듯, 모시옷을 입은 하연순 여사의 수줍고 청초한 모습 그대로였다.

이것 봐라! 여기서는 잘 보인다!'

두석이 목소리가 달밤을 타고 주변의 나지막한 산으로 퍼져갔다.

점백이가 대야 물에 손가락을 집어넣으려 한다.

물이 흔들리면 암 것도 안 보인단 말여!”

두석이가 점백이에게 말했다.

자 봐! 빨강색이 줄어들고 있어.”

점백이가 빨강색이 줄어든 것이 자기 공적인 듯 큰소리로 말했다.

 

초가집 안방 문이 열리는 기척이 났다. 열리는 게 아니라 막강한 힘으로 콱! 밀어붙이는 소리가 밤의 정적을 갈랐다.

임자! 어딜 가려고? 지금 야밤인 거 몰라? 어허 참!”

탄식하는 소리에 이어 두석이 아버지의 고무신 끄는 소리가 들려왔다.

! 허어이! ! 치치 이이…….”

두석이 어머니가 기성을 지르며 방문을 박차고 툇마루를 뛰어넘어 마당으로 내려섰다. 맨발에 단속곳 바람이었다.

! 허어이 악! 치치 이이!”

새하얀 광목천을 입으로 찢는 소리일까? 소름끼치는 비명과 함께 그녀는 도리질을 한다. 허공에 대고 두 팔을 휘젓는다. 달빛이 그런 그녀에게 그림자를 지어 준다. 어머니가 도리질을 하면 그림자가 도리질을 하고 어머니가 팔을 휘두르면 그림자도 팔을 휘둘렀다.

어여! 들어가요! 그러다 고뿔 걸린다고, 어여!”

아버지가 어머니 팔을 붙잡으려고 나선다.

! 허어이! ! 치치 이이!”

어머니는 허공에 대고 헛소리를 한 번 더 내지르더니 그 자리에 맥없이 주저앉는다. 아버지가 다가가 어머니를 덥석 안았다. 몸피가 줄어 예닐곱 난 아이처럼 가벼웠다.

초가집 마당은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 봐라! 지금 빨강색이 더 넓게 퍼졌단 말야?”

대야 물에 잠긴 색경에는 태극 문양의 동그라미 형태가 나타났다. 동그라미는 빨강색과 청색 두 가지 색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 범위가 서로 다르다. 청색보다 빨강색이 훨씬 넓게 보인다.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 이거 태극기잖아?”

초등 1학년인 만식이가 놀라 물었다. 학교에 다니다가 어머니가 줄줄이 낳는 동생들 돌보느라 2학년에서 학업을 멈춘 방굴이와, 금년 봄 3학년에 올라간 언년이도 두 눈에 호기심을 담고 대야 물과 두석이를 번갈아 쳐다본다.

시방 아군이 밀린다는 거여 이건!”

두석이의 해설에 아이들은 또 한 번 놀랐다.

! 청색이 우리 국군이야?”

! 그렇다니까.”

아이들은 두석이의 해설에 무서움을 느낀다. 점백이, 방굴이와 언년이, 만식이가 하늘 한 번 보고, 대야 한 번 쳐다보고 그리고 두석이를 쳐다보았다.

달은 점점 높이 떠서 온 마을을 밝게 비추었다. 달빛이 대야 물에 폭 잠겨서 요술을 부리고 있었다.

밤이 이슥했다. 산촌의 초가을 밤은 제법 서늘했다. 하얀 색 무궁화 꽃잎이 밤이슬에 젖어 그 형체가 점점 오그라들고 있었다.

얘들아! 그만 집에 가자!”

두석이가 먼저 일어섰다. 아이들이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갔다.

두석이는 아버지 곁에 누웠다. 들창문으로 달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 허어이! ! 치치 이이……

어머니의 비명이 달밤의 적요를 흔들었다.

어머니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오랜 동안 식음을 전폐한 여인네로는 보이지 않을 만큼 그 기세가 놀랄 만큼 강해보였다.

쪽 머리가 풀어져 가슴께로 흘렀고 입가엔 허연 거품이 엉겨 붙었다. 목소리는 쇠어 가닥가닥 끊어진다. 어머니는 무슨 말이든 하고 싶다. 말이 되어 나오지 않을 뿐이다. 답답하여 자꾸 소리를 만들어 뱉는다.

아버지가 잠을 깼다. 달빛이 들창문을 지나서 아랫마을 뒷산 중턱에 걸려 있었다. 새벽이 머지않은 시간이었다.

 

! 이 악질 반동 에미나이! 바른대로 말하라우야! ”

한 마디 소리를 내지를 때마다 산골 이발소에서 면도날을 갈을 때 사용함직한 굵다란 가죽 혁띠가 어머니의 몸을 향해 휘리릭! 날아왔다.

! 허어이, ! 치치 이이

그녀가 몸을 피한다는 게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 , 이마, 머리 정수리, , 팔뚝 언저리에 가죽 혁띠가 더 세게 날아왔다.

입술이 짓이겨지고 머리 부분과 이마는 여러 갈래로 찢어졌다. 흐트러진 머리칼 사이로 붉은 피가 낭자하게 흘렀다.

! 허어이! ! 치치 이이…….

하연순 여사는 피를 내뿜으며 알 수 없는 소리를 반복했다. 피의 소리에 이어 쇠심줄을 끊듯이, 혹은 돌덩이를 부수듯 이를 뿌드득! 오지게 갈았다.

! 허어이! , , , 대체 이게 무슨 짓이야? 치워라! 이놈들아!

그 소리가 입안에서 맴돌다가 얼도 뜻도 없는 망측한 발음이 핏줄기를 튀기며 하연순 여사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바른대로 불으라우! 살고 싶으면 우정식 반동새끼 숨은 곳을 빨리 말하라우! 이 독종 반동 에미나이!”

철썩! 철썩!

가죽 혁띠가 공중에서 휘리릭! 하고 내려오면서 하연순 여사의 아랫도리를 서너 차례 강타했다. 어떤 손이 하연순 여사의 저고리 고름을 우악스럽게 잡아 뜯었다. 그 서슬에 치마 단이 툭 터지고 속곳이 줄줄 흘러내렸다.

이 반동 에미나이! 마구 두들겨 패라우!”

누군가가 옆에서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휘리릭!!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연속 내려치는 가죽 혁띠의 공격에 하연순 여사의 몸이 허무러진다. 그녀는 더 이상 어떤 항거도 못한다. 그녀는 눈을 허옇게 뒤집어 뜨고 기절해버렸다.

괴뢰군들은 이웃사람 중에서 유독 하연순 여사를 들들 볶았다. 반동에 악질이란 단서를 하나 더 붙였다. C시의 유지급인 남편 우정식 씨는 대한청년회 창립멤버였고 하연순 여사는 대한부인회 간부였다.

바른대로 불면 집에 보내준다! , 말해! 니 남편 어디 숨겨놨나?”

이북에서 넘어온 빨갱이보다 C시에 사는 신생빨갱이가 더 기승을 부렸다. 신생빨갱이는 하연순 여사에게 안면이 있는 사내였다. 그는 하필 하연순 여사의 면상을 수차례 후려쳤다. 이마에서 코언저리로 굵은 선이 그어지면서 새빨간 피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 허어이, ! 치치 이이…….”

얼굴을 감싸느라 몸을 넙죽 숙이고 두 팔을 올리자 또다시 악마의 가죽 혁띠가 하연순 여사의 등허리를 강타했다.

하연순 여사는 ! 허어이외에 더 말을 잇지 못한다. 서른다섯 하연순 여사의 몸이 통나무 쓰러지듯 나동그라졌다.

! 허어이 악! 치치 이이…….”

그녀가 죽을힘을 다해 울부짖던 외마디 비명도 달빛 속에 스러졌다.

그녀의 몸 깊은 곳에서 유난히 붉고 진득한 피가 콸콸 쏟아져 나왔다. 사람형체를 띤 생피 덩어리였다. 바로 그 순간 그녀의 몸 안에 깃든 생명체가 유명을 달리했다.

하연순 여사가 사망한 한 줄 안 것일까. 죽을 것이라 예상한 것일까. 괴뢰들이 황급히 움직였다. 거적때기를 가져와 그녀를 둘둘 말았다. 그들은 신작로 복판에 그녀를 내던지고 도망갔다. 달빛이 그 모든 정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웃사람들이 네댓 모여왔다. 묘안이 없었다. 보다 못해 옆집에 사는 점백이 아버지가 지게에 그녀를 짊어지고 달밤을 달려 원능골로 숨어들었다. 이웃들도 인민군들의 눈을 피해 간단한 가재도구를 싸들고 원능골로 옮겨 왔다. 점백이네 친척이 원능골 토박이라고 했고, 어려서 출가하여 작은 암자를 꾸린 하연순 여사의 사촌언니가 그 근처에 살고 있다고 했다.

〇〇천을 건너 산등성이를 타고 시오리쯤 올라가다가 소나무 숲에 이르면 두 갈래 길이 나타난다. 한쪽은 소나무 숲 저 아래로 푸른 들판이 이어지고, 반대쪽은 금광으로 이름난 B면으로 가는 자갈과 모래밭 길이었다.

원능골은 푸른 들판 그 너머로 큰 산 작은 산이 겹겹으로 둘러싼 작은 마을이었다. 산 밑에 초가집 몇 채가 있었다. 전쟁이 터지자 서둘러 피난을 떠난 마을에는 개 한 마리 남아 있지 않았다.

원능골은 마을로 올라오는 외길만 있어 무슨 일이 일어나든 곧 그 기척을 알아낼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사람들은 두석이네를 제외하고는 낮에는 주로 산속에 파 놓은 방공호에서 지내다가 밤이 되어서야 마을로 돌아왔다. 더러는 양식을 채집하러 들에 나가기도 했으나 모든 활동에 제약이 따랐다. 대개는 위험을 감수하고 깊은 산으로 헤매고 다녀야 산나물이라도 캐올 수가 있었다.

 

……국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무슨 일이 있어도 수도 서울은 사흘 안에 사수할 것이니 국민 여러분은 정부와 군을 믿고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해 주시기 바랍니다…….”

두석이 네는 말할 것도 없고 점백이 방굴이 언년이와 만식이 네는 라디오 방송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들은 피난 떠나기를 주저했다.

……전 국민은 군을 신뢰하고 미동함이 없이 각자의 직장을 고수하면서 군 작전에 협력하기 바란다 …….”

라디오 방송도 며칠 못가 먹통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얼마 후 하연순 여사의 참혹한 비극은 막이 올랐다.

C시의 중앙에 위치한 하연순 여사의 집은 C도와 C시를 아우르는 북조선 인민공화국 여성동맹위원회 사무실로 접수되었다. 이불 한 채, 식량 한 톨 끄집어내지 못한 채 하연순 여사는 아들과 함께 뒤란의 골방으로 내몰렸다.

붉은 완장을 찬 애송이 인민군을 비롯하여 나이 든 장교들 몇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이층 창문에는 남조선 해방이라는 대형 글씨가 나붙고, 김일성을 찬양하는 프랜카드가 사진과 함께 대문 위에 내걸렸다. 우정식 씨의 일층 사무실은 그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너른 마당에는 화단의 수많은 화초들과 무궁화나무를 짓뭉개고 쌀가마니가 산처럼 쌓여갔다. 그 쌀은 전선의 인민군에게 보낼 미수가루를 만든다고 했다.

하연순 여사는 매일이다시피 집 밖으로 끌려 나갔다. 도 경찰국 소속의 관용차가 대문 앞에서 부릉거리면 두석이가 잽싸게 뛰어나왔다.

야잇! 악질반동 새끼! 저리 비키지 못해!”

따발총을 빼어들고 애송이 인민군이 어머니를 따라가려고 떼를 쓰는 두석이를 위협했다.

그런 날 저녁이면 어머니 하연순 여사는 옷과 전신에 피 칠갑을 하고 파김치가 되어 돌아왔다. 밤새 꿍꿍 앓는 소리를 냈다. 두석이가 어머니의 형상에 놀라 울음을 터뜨리면 어머니는 두석이 입을 막는 시늉을 해보이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

어머니가 끌려갈 때마다 두석은 장독대 옆 화단에서 막 익기 시작한 꽈리를 땄다. 풋내 나는 꽈리를 입에 넣고 씹으며 한 여름의 공포와 허기를 달랬다. 무슨 기척이 나거나 발소리가 들리면 소년은 뒷문에 붙어있는 목욕탕의 커다란 무쇠 솥 안에 들어가 납작 엎드렸다. 기억조차 하기 싫은 악몽이었다.

 

깨어진 색경을 대야 물에 담그면 잠시 후 희한한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달밤에 펼쳐지는 행사는 피난민 아이들의 유일한 놀이였다.

태극 문양의 두 가지 색깔은 자주 범위가 변했다. 변화의 모습은 아이들에게 색다른 세계를 보여주었다. 빨강색 청색의 변화를 보고 두석이를 비롯한 어린이들은 전쟁의 현재상황과 집에 돌아갈 수 있는 희망을 짐작으로 알아낼 수가 있었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일에 일체 참견하지 않았다. 그들은 날만 새면 먹을 것 걱정이 태산이었다. 내일 죽음이 닥친다고 해도 우선은 보리죽이라도 맘껏 먹을 수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었다.

하연순 여사의 사촌 언니, 해명(海鳴)스님의 안내로 산골짜기 초가집에 우정식 씨가 출현했다. 한강 다리가 끊기자 그는 무작정 피난민 무리를 따라나섰다고 했다. 가다가 멈추고 걷다가 졸면서, 밤을 낮처럼 낮을 밤처럼 쉬지 않고 걸어서 천신만고 끝에 고향으로 내려왔다는 이야기였다. 그의 행색이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거동을 못하는 하연순 여사의 불 건강과 실어증이었다.

우정식 씨야말로 식량 구하는 작업을 자유롭게 수행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느닷없이 방밖으로 뛰어나가 헛소리를 질러대는 하연순 여사를 지키고 있어야 했다. 이따금 해명 스님이 가져다주는 보리쌀 몇 되와 밀기울이 그들의 연명수단이 되었다.

해명 스님이 원능골에 다녀갈 때는 양식 뿐 아니라 이따금 C시의 소식이며 시국에 대해 전해주었다.

머지않아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습니다. 기다려 보십시다.”

우정식 씨는 아이들이 모여 앉은 뒤란으로 갔다. 보름이 지나 달빛은 저번처럼 밝지는 않았다. 그러나 뒤란은 더 적요하고 더 소슬한 바람이 불어왔다. 죽음 같은 긴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깊어가고 있었다.

아버지!”

두석이가 대야 앞에서 큰 소리로 아버지를 반겼다.

아이들이 일제히 대야에서 물러나며 우정식 씨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아이들의 눈이 달빛을 받고 환하게 빛을 뿜었다.

아버지! 청색이 훨씬 늘었잖아요. 보세요! 반을 넘었어요.”

대야 물에 잠긴 색경에는 청색이 면적을 넓혀가고 있었다. 적과 청의 대립구도가 확실하게 바뀐 모습이었다.

그래? 청색이 뭔 데?”

아저씨! 청색은 아군이예요! 우리 국군이 이기고 있어요!”

아이들이 신이 나서 외쳤다.

우정식 씨는 문득 해명 스님의 말이 떠올랐다.‘머지 않아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습니다라는

애들아! 그만 들어가 자거라. 밤바람이 제법 차구나.”

아이들은 하나 둘 제집을 찾아 들어갔다. 원주민들이 피난을 떠난 빈 집은 그들의 임시 거처요, 달밤의 행사를 은밀하게 진행할 수 있는 비밀의 성소이기도 했다.

대야 물에 달빛이 고요히 내려앉았다. 아이들이 자리를 떠난 후에도 빨강색은 점차 줄고 청색이 그 자리를 확보하고 있었다. 달빛이 물과 거울과 함께 이루어내는 양상은 그 시각 청색의 대길을 예고하고 있는 듯 했다.

댓돌 밑에서 처연히 울던 귀뚜라미 소리가 뚝 그쳐 있고, 숲을 흔드는 바람소리가 이따금 귓가를 스쳤다.

 

! ! !

대포소리가 먼 곳에서 둔중하게 들려왔다.

! ! !

더 자주 연달아 들렸다.

두석아! 우리는 여기를 떠나야 된다! 어서! 옷 입어라!”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포대기를 들씌워 들쳐 업었다. 해명 스님이 소리 없이 다가와 아버지 등에 업힌 어머니의 훌쭉한 볼을 쓰다듬었다. 해명 스님의 두 눈에 눈물이 맺힌다.

가다가 요기라도 하고 가시게!”

해명 스님이 아버지 손에 무언가를 쥐어 주고는 새벽안개 속에 소리 없이 사라져 갔다.

아버지! 우리만 가는 거예요?”

두석이는 친구들과 함께 달빛과 물, 색경이 함께 연출하는 달밤의 행사를 더는 계속할 수 없는 점이 섭섭했다.

그들은 큰 길을 피해 길이 아닌 길, 마을 뒤 고샅으로 돌아서 나왔다. 잡초와 잡목이 어우러진 등성이에 무궁화나무 몇 그루가 열 지어 서 있었다. 마을이 생기면서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일까. 무궁화나무 둥치는 제법 실해 보였다. 새벽이슬을 머금고 함초롬히 꽃잎이 벌어지려는가. 어둠가운데 하얀 꽃빛깔이 돋보였다. 꽃송이들이 서로 소곤거리며 두석이네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C초등학교에서는 전 학년이 식목일에 무궁화나무를 심었다. 실습농원 가장자리에 심은 무궁화나무가 자라서 차례로 꽃을 피웠다. 벚꽃처럼 미친 듯이 한꺼번에 피어나는 게 아니었다. 한 송이 두 송이 질서 있고 침착하게, 어떤 때는 여러 송이가 더불어 피어나는 무궁화 꽃. 어제 피었던 꽃에 이어서 내일은 또 다른 나무, 다른 가지에 솟아오르는 연보랏빛 무궁화 꽃. 흰 색깔도 있고 분홍색도 있었던가. 미술시간에는 무궁화 꽃 그리기 대회가 열렸다. 운동장에 나 앉아 크레파스로 무궁화를 색칠하던 일, , 왜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는 거야.

전쟁은 왜 일어났는가. 어머니는 왜 인민군에게 집을 통째로 빼앗긴 것도 모자라 그들에게 수시로 불려나가 거동을 못할 만큼 저 지경이 된 것인가.

다른 이웃들은 C시의 집으로 돌아가는데 아버지는 왜 서울로 가자하시는가. 무궁화 꽃을 보는 순간 왜? ? 하면서 잡다한 생각들이 두석이의 감각을 괴롭혔다.

두석이네 일가는 산길로, 숲속의 외진 길로 돌아서갔다. 고단한 행군이었다. 그러나 많이 걸어도 하루 십리 정도가 고작이었다.

! ! !

대포소리가 더욱 잦아지는가 싶었다.

곧 우리 국군이 서울로 올라올 겁니다!”

간혹 산길에서 만난 피난민들이 전해준 소식이었다. 그들도 서울로 간다고 했다.

어머니는 죽은 듯 아버지 등에 엎드려 있다. 어머니를 들쳐 업은 아버지는 비지땀을 흘리고 걸어간다. 돌부리에 넘어지기도 하고 발걸음이 가끔 휘청거리는 기미를 짐작할 수 있다. 두석이는 더욱 힘을 내어 아버지를 따라갔다.

 

국어시간에 배웠다. 무궁화 꽃은 은근과 끈기가 생명이라는 것을. 두석이는 꽃이 피어나는가 하면 지고, 지는가 싶으면 피어나는,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꾸준히 피어나는 무궁화 꽃이 신기했다.

벌레도 잘 타지 않고 추위와 더위에도 잘 견디는 식물, 철난 아이처럼 덕성스럽고 무던한 무궁화(無窮花)! 무궁화 꽃잎 다섯 개는 나무, , , , 물을 말하며 오색(五色), 오미(五味), 오행(五行), 오성(五星)을 뜻한다고 국어선생님 말씀이었던가. 여기서 잠시 C초등학교 3학년 두석이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워진다. 혼란스러운 두석이의 기억력은 전쟁이 일어난 후 겪게 된 극심한 배고픔과 죽음에 버금가는 공포 때문일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도 토로할 수 없는 두석이만의 위기의식! 어머니 하연순 여사에 대한 깊은 슬픔 때문이었다.

일제 강점기시대 애국자들은 나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산간에 숨어들어 몰래 무궁화 묘목을 길렀다고 한다. 무궁화는 누가 돌보지 않아도 수더분하게 잘 자라 꽃을 피웠다. 그런데 일본경찰은 무궁화나무를 보는 족족 불살라버리거나 뽑아버렸다고 했다. 외딴 무덤가에 무궁화나무가 저 혼자 자라 꽃피고 있으면 그들은 그 무덤까지 파헤쳤다고 하던가. 그 이유는 무궁화가 우리나라 국화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무궁화 무궁화 우리나라꽃 삼천리강산에 우리나라꽃

피었네 피었네 우리나라꽃 삼천리강산에 우리나라꽃

 

두석이는 1학년 때 배운 무궁화 꽃 노래가사를 외우며 C시의 집 앞마당에 심겨진 무궁화나무를 기억했다. 졸지에 인민군들이 들이닥쳐서 화단을 훼손하고 그 위에 쌀가마를 산처럼 쌓아놓기 전까지 화단 풍경은 어디까지나 아름다움과 평화였다. 많은 화초 가운데서 무궁화 꽃은 달리아, 장미, 양귀비의 세련미와 화려함 대신 순박함과 순결, 겸손의 덕을 지니고 있었다. 하얀 교복을 잘 다림질하여 입은 여학교에 갓 입학한 시골 소녀처럼 미덥고 수수했다. 자태를 뽐내거나 과시하지 않는 무궁화 꽃은 두석이 생각에 어머니의 성품을 똑 닮아있었다.

괴뢰군들은 나라꽃 무궁화도 어머니도 몰라보았다. 한창 꽃 피기 시작한 무궁화나무에 쌀가마를 쌓았으니 꽃과 가지가 어머니처럼 무참히 짓밟혔을 터이다. 전쟁의 피바람이 물러가면 무궁화도 어머니도 다시 살아날 것이다. 무궁화는 은근과 인내, 끈기를 자랑하는 꽃이니까. 어머니는 무궁화 꽃이다. 무궁화 꽃은 어머니다! 두석이가 돌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두석아! 여기 바위에 좀 쉬었다 가자!”

아버지가 어머니를 잔등에서 내려 바위에 걸터앉게 해주었다.

아버지! 발 아파요! 그만 가면 안 돼요?”

두석이가 물집이 잡혔다가 헐어버린 발바닥을 가리키며 울상을 지었다.

하연순 여사가 몸을 일으켜보려고 손으로 바위를 잡는다.

가만있어, 임자! 움직이면 안 되어!”

우정식 씨가 얼른 하연순 여사를 바위에 곧추 앉혀준다.

두석아! , 봤잖아. 청색이 이기는 거. 조금만 더 참자.”

임자도 힘들지? 물 좀 마셔!”

아버지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커다란 망태기에서 물병을 꺼내 어머니에게 주었다.

쿠르륵! 쿠르륵!”

하연순 여사의 식도로 내려가는 물소리가 우정식 씨에게는 유난히 크게 들렸다. 비로소 우정식 씨 마음속에 하연순 여사가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싹트기 시작했다.

자아! 다음은 우리 아들 두석이가 마실까?”

아버지가 애써 울음을 참고 있는 두석이에게 물병을 쥐어준다.

옳지! 우리 두석이는 대한민국의 용감한 어린이다!”

아버지가 두석이를 격려해 주었다.

아버지 먼저 드세요!”

두석이는 물병을 아버지에게 도로 내어준다.

어찌하든지 살아남아야 한다. 아무 죄도 없는 젊은 아녀자를 끌어다 초죽음을 시킨 그들에게 원수를 갚아야 한다. 우정식 씨의 내부에서 분노의 피가 거꾸로 치솟았다. 가장이 없는 집안에 쳐들어와 인민공화국 간판을 걸어 놓은 그 자체만으로도 용서가 안 되는 일, 하물며 임신 중인 아녀자를 붙잡아다 생사를 알 길 없는 남편을 내놓으라 하고, 잔인무도한 고문으로 뱃속의 태아까지 희생시키다니…….

하연순 여사의 임신은 그들 부부에게 10년 만의 경사였다. 두석이를 낳은 후 오래도록 소식이 없다가 근근이 이룬 그들 가문의 소박한 꿈이었다.

 

! ! !

대포소리가 더 크게, 더 오래 울렸다. 지축이 울리고 산천이 놀라 요동쳤다.

아버지! 대포소리가 크게 들려요!”

두석이는 조금 전에 비해 생기를 되찾은 듯, 살 껍질이 벗겨진 발가락에 양발을 끼우며 말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등에 업었다. 동쪽으로부터 먼동이 터오고 있었다.

집에 가서 갈아입을 옷 좀 챙겨가지고 가야겠다.”

아버지가 어머니의 몸을 추스르며 말했다.

하연순 여사의 몸에서는 역한 냄새가 났다. 만신창이가 된 몸을 치료조차 제대로 받아보지 못하고 몇 주가 지났다. 산속의 청량한 공기가 두석이네 가족의 절박함을 극명하게 대변해 주었다.

아버지! 인민군이 우리 집에서 나갔어요?”

그놈들도 대포소리 듣고 도망갔을 거야…….”

아버지가 말꼬리를 길게 끌었다.

! 허어이! ! 치치 이이……

하연순 여사의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도리질을 하면서 몸을 떨었다. 그녀의 퀭한 눈에 두려움이 담뿍 담겨있다.

아버지가 걸음을 늦추었다. 두석이도 그 자리에 우뚝 멈추어 섰다.

임자! 왜 그래? 물마실까?”

아버지가 재빨리 한 손으로 하연순 여사의 몸체를 떠 바치고 한 손으로는 허리춤에서 물병을 꺼내려고 몸을 틀었다.

! 허어이! ! 치치 이이…….”

하연순 여사가 비명을 지르며 번개처럼 아버지의 등허리를 벗어났다. 그녀는 산 쪽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그 뒷걸음질이 어찌나 민첩한지 우정식 씨는 물병을 꺼내지도 못하고 허둥거렸다.

어머니! , 안 돼!”

두석이가 외쳤다. 숲속은 캄캄 어둠이었다.

, !”

새벽을 찢는 고성이 온 산을 쩌렁, 흔들었다. 그 시간 이후 하연순 여사의 어떤 소리도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쿵! ! !

대포소리가 더 가깝게 더 크게 들려왔다.

임자! 임자!”

어머니! 어머니!'

우정식 씨와 두석이가 산 아래를 굽어보며 목청껏 소리쳤다.

 

막 솟아오르는 아침 햇살에 비로암(毘盧庵) 대웅전의 기와문양이 장엄하게 드러났다. 대웅전 계단 옆으로 천일홍 나무가 발갛게 꽃을 피웠고 반대편엔 꽤 큰 무궁화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전쟁의 소용돌이가 온 천지를 휩쓸어도 비로암의 무궁화나무는 줄기차게 하얀 꽃을 피워냈으며 여전히 숱한 꽃봉오리를 달고 있었다.

새벽 예불을 마치고 법당을 나온 해명 스님 귀에 불현듯 괴이쩍은 소리가 잡혔다.

처어~! ~, ~!”

불규칙하고 요령 없는 소리였다. 한 번 들린 후 끊어졌다가 잊을 만하면 다시 들려왔다. 혹 길 잃은 산짐승일까, 사람일까. 이 산중에 이런 시간에 사람이 있을 리가 없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먼 듯 가깝게 들려오는 그 소리, 쇠잔하여 잦아드는 그 소리는 해명 스님에게 생사기로의 위급함을 전하고 있었다.

행자 스님이 구르다시피 산을 내려갔다. 해명 스님은 그의 뒤를 따라갔다.

, 누구요? 누구 있소?”

앞서 가던 행자스님이 두 손을 나팔처럼 모아 쥐고 큰소리로 외쳤다.

게 누구요? 누구 있소?“

숲에서 메아리가 대답했다.

그 시각 법당 뜰에는 하얀 색 겹 무궁화 꽃이 수줍게 피어나고 있었다. 마치 모시옷을 곱게 차려 입은 두석이 어머니의 미소처럼.

황금빛 가을 햇살이 하얀 색 겹 무궁화 꽃잎 위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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