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제목 [단편소설] 파리의 이별
작성자 유중원
작성일 2021-07-31 14:23:21
조회수 27



파리의 이별

파리는 연인들을 사랑한다.

— 콜 포터

그러고 보니…… 파리가 그립다.

파리의 고약한 겨울 날씨가 생각난다. 찬비가 내리면 비에 젖은 우울한 거리에 낡은 도시의 온갖 서글픔이 난데없이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파리의 뒷골목에 비가 내리고 하수구가 역류하며 악취가 허공으로 퍼져나간다. 남루한 차림의 알코올 중독자인 집시 노인이 비를 맞고 걸으면서 투덜댄다. “언제나 늙어가고 삶은 어느덧 지나가버리고 없네.”

파리의 우울.

보들레르가 말한다. “나는 그대를 사랑한다. 오, 더러운 도시여! 늙은 창녀에 취한 늙은 호색한처럼, 그 지독한 매력이 나를 끊임없이 젊게 해주는 이 거대한 갈보에 취하고 싶다.”

그래도 낭만적인 도시 분위기를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공부를 지독히 했던 그 시절의 국립 공과대학 (……그때는 가끔 커피와 카페인을 엄청나게 마시면서 그 힘으로 며칠씩이나 잠을 안자고 버티며 공부를 했다…… ), 압생트 또는 가짜 압생트인 페르노가 생각난다. 가끔은 쑥 냄새가 진하게 나는 스페인 압생트인 오헨도. 나는 그때 너무 가난했으니까 값이 싼 페르노를 훨씬 더 많이 마셨다. 그것들을 어찌 잊을 수가 있겠는가.

나는 파리 시절 값이 싼 그걸 참으로 많이 마셔댔지. 소르본 대학에서 국립 중세박물관을 왼편으로 돌아서 센 강의 좌안을 향해 걷다보면 나오는 생 미셸 거리의 먹자골목에 있는 터키 식당에서 주로 가짜 술을 마셨던 거야. 가끔은 중국 식당에서도 마셨다. 그것은 원래 녹색을 띠고 있지만 물을 타서 희석시키면 금세 우윳빛으로 변하지. 맛은 달짝지근하여 감초 같고 기분은 한껏 고조되지만…… 역시 뒤끝이 안 좋은 게 흠인 거야. 압생트는 목구멍 아래로 털어 넣기 전에 음미하여야만 제맛이 나지. 입안 가득히 그걸 들이켜서는 마취된 듯한 몽롱한 기분 속에서 술이 혀끝을 감싸고 도는 것을 느껴야만 하지. 그것은 입안에서 이리저리 굴리며 오래 맛을 음미하다 천천히 목구멍으로 넘겨서 속을 덥혀야 제맛이 나는 거야. 그렇지, 압생트의 향기는 정말 죽여주지. 그걸 몇 잔 걸치면…… 간덩이가 부어 몸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커져서 배 밖으로 튀어나오지. 그게 환각 작용이 있어서 머리를 썩게 만든다고 하는데, 그 술에 대한 이유 없는 비방은 믿을 게 못 되는 거야.

다만, 그 마법의 술은 나에게 옛날에, 어린 시절에 일어났던 모든 것들을 차례차례 떠오르게 하지. 남쪽 바다, 잿빛 뻘밭, 벌교읍, 고향 마을, 아카시아 꽃, 제비, 참새, 갈매기, 철새, 똥개, 아버지와 동생, 어머니, 대합실, 톱밥 난로, 완행열차, 낙동강, 삼각주의 모래밭, 갈밭새, 대신동 등을.

그리고, 센 강이 생각난다. 그 강은 파리의 동남쪽 변두리에서부터 강폭이 넓어지고 눈썹 같은 원호를 그리며 도시를 가로질러 좌안과 우안으로 나누고 북쪽으로 흐른 다음 파리를 빠져나간다. 그러나 센 강은 파리 한복판에 있다. 그 강은 파리의 심장이다. 센 강은 무슨 빛깔일까. 복잡한 색이다. 그 강은 주변의 모든 사물과 인간의 삶을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강물은 새벽녘에는 잠깐 동안 소금처럼 흰색을 띠다가 벌써 검은색으로 변하고 마침내 초록색이 된다. 쇠라의 ‘그랑드자트 섬의 센 강 강둑’에서 강물은 분홍색과 흰색, 파란색이고, 마티스의 ‘퐁 생 미셸’ 속 센 강은 빨강색이 어려 있다.

센 강은 흐른다. 강물은 끊임없이 흘러가므로 한순간에도 같은 강물은 있을 수 없다. 흐르지 않은 강은 더 이상 강이 아니다. 강물은 계절마다 하루에도 시시각각 변한다. 그러니 영원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변하고, 또 변한다. 그러므로 영원에 대한 집착은 허망한 것이다. 사랑도 영원할 수 없다. 우리는 사랑하는 순간 이별의 순간을 염려해야 한다.

우린 그때 센 강의, 예술의 다리라는 뜻을 가진 퐁데자르까지 걸어가서 시테 섬의 아름다운 풍경과 흐르는 강물을 번갈아 내려다보면서 감격에 겨워 얼마나 사랑을 맹세했던가. 우리는 피차 파리의 이방인이었다. 너무 외롭고 사랑에 굶주려 있었기 때문인지 가벼운 대화와 접촉만으로 쉽게 사랑에 빠져 버렸다. 그러므로 섬세한 사랑의 기술은 필요 없었다. 그때는 우리 사랑이 영원할 줄 알았다.

또, 마로니에 나무와 미술관 순례가 가끔 생각나고……. 마로니에는 5월쯤 흰 바탕에 붉은색을 띤 꽃이 만발하면 정말 환상적이었지. 몽빠르나스 대로의 마로니에가 녹색으로 우거지면 나폴레옹의 장군인 네이 사령관의 청동 동상— 승마 부츠를 신고 오른손에 칼을 들고 엉거주춤 자세를 취하고 서 있는— 근처의 벤치에서 꽃잎의 짙은 향기에 취해서 오랫동안 앉아 있곤 했었지. 봄이 대기 속에서 한창 무르익어 감을 뼛속 깊이 느낄 수 있었거든. 그때 지빠귀들이 푸른 잎 속에 숨어서 얼마나 시끄럽게 짖어대든지……. 주로 그녀와 함께 있었지. 아 아, 우린 서로가 그 시절 너무너무 행복했었는데…….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H가 갑자기 생각나는군. (나는 그녀의 이름을 밝힐 수가 없다. 어쩐지 밝혀서는 안 될 것 같다. 그게 지금 내 마음이다.)

안나 (Hannah Hustvert)는 이제는 거의 잊어버렸기 때문에 망각에 묻힌 기억 속 저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희미한 추상적 존재에 불과하였지만 내가 파리를 생각할 때면 불가피하게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균형 있는 몸매.—내가 여자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기준이었다. 그것은 건축가다운 안목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건축 설계에서 균형과 대칭, 간결함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긴 검은 머리에 뿔테 안경을 써 지적으로 보이는 동유럽의 보헤미아에서 온 여학생.—그녀는 나보다는 훨씬 나이가 어렸지만 학교 강의실에서 몇 번 만났고, 눈인사 정도를 나누는 사이가 되자 언제부터인가 가벼운 데이트를 하게 된 것이다.

그 벤치에서 우리는 몇 시간씩이나 지치지 않고 건축 설계의 세밀한 과정과 완공된 건물에 대해 진지한 얘기를 주고받았다. 우리는 남녀의 차이, 문화 배경의 차이 (중부 유럽의 바로크 양식의 세계와 동양적인 목조 기와집의 세계의 차이)를 떠나서 건축가는 건물을 사용할 사람들과 보다 긴밀한 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점에서, 또한 건축에 쓸데없이 너무 많은 이데올로기가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건축이란 원래 혼돈의 모험이긴 하지만 그러나 냉소주의만큼은 극복해야 한다는 점에서, 건축은 사치품이 아닌 사회적 필수품이기 때문에 건축가는 형식과 스타일, 기교 대신 건축의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러므로 건물을 바로크식으로 장식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기능적이고 단순하고 삭막한 건축을 해야 한다는 아돌프 루스의 건축 미학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는 점 등에서 견해가 완전히 일치하였다.

그때 우리는 파리지앵처럼 말하고 그들의 생활을 흉내냈다. 주말이면 언제나 미국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관에 가고, 미술관과 박물관에도 가고, 돈을 절약하기 위해서 메인 요리만 시켜 식사를 하고, 밤늦게까지 싸구려 술을 진탕 마셨다.

센 강 좌안의 생 미셸 대로에 있는 단골집인 (지금은 그 이름이 도저히 생각나지 않는) 그 카페에 들어서면 주크박스에서는 언제나 똑같은 노래가 흘러나왔다. 우리는 먼저 카페 한쪽에 있는 낡은 당구대에서 미국식 포켓 게임을 했고 그것에 지치거나 싫증이 나면 그 카페에서는 반 공식처럼 주로 독한 럼주를 마셨다. 그때 그녀는 술잔을 든 채 줄담배를 피웠다. 가끔은 심하게 기침을 콜록거리면서도. 그녀가 말했다. “담배를 애당초 피우지 않기로 한 건 정말 잘하신 거예요……. 나는 어머니가 악을 버럭버럭 지를 때마다 밖으로 나가서 담배를 피웠지요. 다른 건 할 게 없었거든요……. 나는 여러 번 담배를 끊으려고 노력했지만 그때마다 불가능했지요…….”

이제 가을로 접어들었다. 그녀는 독일 사람처럼 가죽 옷을 좋아했을까. 가을과 겨울에는 검정색 엷은 스웨이드 가죽 재킷을 늘, 계절 내내 입고 다녔다. 마로니에 잎이 떨어진 센 강 좌안의 강변로. 강에서 올라오는 밤안개와 축축한 냉기 때문에 그녀는 몸을 움츠렸다. 그때는 어김없이 담배에 불을 붙였고 담배연기 한 모금을 뿜어내며 가볍게 기침을 했다.

그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거대한 사기극이 연출되었던 보헤미아의 요새 도시 테레친 (독일어로는 테레지엔슈타트) 출신이다. 테레친의 게토에 임시 거주하는 유대인들은 국제적십자사의 대표들이나 외국인 시찰단이 찾아오면 나치의 연출에 따라 아주 잘 살고 있는 척 연기를 해야 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환상은 없었다. 그들은 죽음의 대기실에서 살고 있었고 조만간 모두 죽을 거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유대계인지는, 전체적인 얼굴 윤곽과 검은 머리 (그녀는 숱이 많은 머리카락이 목덜미까지 흘러내려서 목을 완전히 감싸고 있는데 그러나 머리카락은 매우 여리고 마치 검은 그림자처럼 보인다.), 약간의 매부리코를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확실치 않다. 어쩌면 아슈케나지 유대인의 피가 반쯤만 섞였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1960년대 출생했으니까 1948년 이후 공산주의 체제, 1968년 이후 옛 소련이 탱크를 앞세워 체코를 점령하고 있던 그 공포의 시기에 암울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것들이 감수성이 극도로 예민한 시절에 그녀에게 간접적으로 또는 직접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거나 상처를 입혔는지 그 고통의 깊이를 헤아릴 수는 없다.

그녀는 말했다. “그 나이에는 꿈같은 추억이 많을 때이지요. 그러나 난 초등학교 시절부터 홀로코스트의 비극에 대해서 귀가 따갑도록 들어야 했지요. 어머니는 그 참상을 겪은 뒤 딸에게 그 상처를 쏟아냈던 거예요. 자신의 아픔과 희생을 딸에게서 보상 받으려는 어머니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던 것이지요. 어머니는 모순투성이이고 아주 복잡했어요. 자신은 절대 유대 혈통이 아니라고 주장했지요. 그런데도 억울하게 수용소로 끌려갔다는 거예요. 하지만 자신이 살아서 돌아온 것은 어쨌거나 신이 보살펴 줬기 때문이라고 했어요.

사실 어머니가 나를 사랑했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어머니는 늘 내게 말했었지요. 네 년이 커서 사람 구실을 하는 꼴을 보고 난 후 내가 죽었으면 싶구나. 그랬어요. 그랬으니 나는 딸들이 어머니로부터 배워야하는 것들을 하나도 배우지 못했어요.

우리 가족은 그 시절 프라하의 유대인 지구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지요. 그건 불문율이었어요. 우리는 프라하에서 가장 번화한 지역인 신시가지에서…… 바츨라프 광장의 국립박물관 바로 뒤쪽에서 유대인이 아닌 것처럼 하고 살았어요.

그러니까 프라하에서 일어났던 1968년 5월 1일의 시가행진 이후 프라하의 봄이 혹독하게 겨울로 변했던 1989년까지, 그 시절에 우리는 끊임없이 당국의 감시를 두려워했지요. 그래서 늘 불안했어요. 아버지에게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무엇인지 아세요? ‘항상 말조심해라. 이걸 밖에서 얘기해서는 안 된다. 그건 얘기하지 마라.’이었지요. 나는 일찍부터 이 세상에 대해 염세주의자가 되었을 거예요. 그때 벌써 나의 인생을 그걸 어떻게 바꿀 수가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지요. 그 시절이 제 기억에서 지워졌으면 해요. 내가 이 세상에 꼭 태어나야 했다면 그 시절이 아니라 차라리 훨씬 나중에 태어났어야 했지요.”

그녀는 그 당시 여전히 이주자로서 느끼는 이중적인 낯섦과 동시에 프라하에 대한 향수병 때문에 몹시 시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소외와 향수의 고통을 뼈저리게 느끼면서도 프라하로 돌아갈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녀는 프라하에 있는 부모님과 친구, 기타 지인들과는 띄엄띄엄 매우 불규칙적으로 극히 사무적인 짧은 내용의 서신만을 교환했다. 그리고 부자인 부모님이 보내주는 경제적 지원을 한사코 거절했다. 다만 국립 장학재단에서 지급하는 소액의 장학금과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여 생활비를 충당하였다.)

그런데 그녀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트라우마 때문에 나처럼 그런 증세를 가지고 있다고 고백한 일이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깊은 연민을 느꼈다. 그 여인 속에서 나의 고통을, 나의 우울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진심으로 위로해줄 수는 없었다. 내 자신의 상처도 지금까지 어쩌지 못하고 있으니까.

그녀는 내밀한 소외감과 지독한 향수병을 달래기 위해 술을, 압생트를, 페르노를 많이도 마셨다.

생 미셸 거리의 터키 식당. 주인은 땟국이 지저분하게 얼룩진 하얀 앞치마를 두르고 터키의 전통 음식인 케밥을 열심히 굽고 있다. 케밥의 구수한 냄새가 실내를 가득 채운 가운데 맥주 냄새, 압생트의 향기가 희미하게 묻어 있다. 언제나 골초인 단골들이 내뿜는 담배 연기가 지독하다. 그들의 땀에 젖은 축축한 몸과 잘 씻지 않은 성기에서 시금털털한 냄새가 풍겨 나왔다. 그들은 후줄근하고 지저분한 작업복 차림으로 죽치고 앉아 집에 들어가는 시간을 어떻게 해서든지 늦춰보려고 술잔을 홀짝거리며 미적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술에 취하면 마리화나를 피우면서 릴케의 시를 읊었다. “……고독은 비처럼 바다에서 저녁을 향해 올라온다. 그러고 나서 언제나 외로운 하늘로 올라간다. 처음으로 그 하늘에서 도시 위로 떨어져 내린다…….”

밤이 깊었다.

가는 비가 내리는 거리는 텅 비어 있다.

그러나 나는 그때 건축 공부에 미친 듯이 열중해서 여자를 길게 자주 만나면 시간만 빼앗긴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스스로 경계선을 설정하고 그 선내에서 할 수 있는 행위를 엄격하게 제한하였다. 나는 소리 없이 외쳤다. ‘더 이상 다가가서는 안 되는 거야. 그렇지…… 그게 한계인 거야!’ 하지만 그건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하였고 실제는 나는 아직도 일종의 강박관념과도 같은 원죄 의식에 사로잡혀 있어서 그 어떤 여자와도 진정한 관계를 가지지 못하였다.

얼마 후, 일 년쯤 후, 여자 쪽에서 먼저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였다. 내가 동의하였다면 우리들은 오스테를리츠 역 뒤쪽 동유럽의 이민자들이 주로 사는 동네의 방 두 칸짜리 아파트에서 동거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녀는 그때 오스테를리츠 역에 있는 즉석 열쇠점에서 만든 그녀 아파트의 복제 열쇠를 나에게 주었다. 그리고 그녀가 말했다. ‘언제든지 열고 들어오세요. 덧문과 커튼이 없는 창문이 하나 있지요. 하지만 창문 밖 강변 풍경은 조금 쓸쓸하지요.’ 그러나 나는 그 열쇠를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녀는 나의 애매한 태도 때문에 크게 실망했을 수도 있다.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래서 (그녀가 늘 했던 완곡한 혹은 솔직한 말들을 토대로 하면) 이러한 의심을 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가 나에게 어떤 열등감을 느낀다고 생각할 순 없다. 그는 단단한 몸매에 잘생겼고 프랑스어는 나보다도 더 유창했으며 학습 능력도 뛰어나지 않은가. 그는 기하학과 스케치, 건축설계에 있어서 너무나 탁월하다. 그 정도의 실력이면 프랑스는 물론이고 유럽 어디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다. 왜 그가 뒤늦게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는 걸까? 그는 학위에도 연연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더 배울 게 없는데 말이다. 나는 그가 동의한다면 결혼해서 파리에서 살고 싶다. 결혼하면 우리는 행복할까? 하지만 이 남자는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거야. 동양인의 수줍음 탓일까? 도덕적 순결주의자일까? 반유대주의자일까? 하지만 동양인들은 반유대주의를 알지 못한다. 그렇다고 동성애자로 보이지도 않는다. 나는 동성애를 과소평가하지 않지만. 그는 게이들의 만남의 장소인 노트르담 대성당 뒤편 공원이나 튈르리 정원의 공공 개방구역을 걸을 때는 그들 쪽으로 눈길도 주지 않았으니까. 그의 얼굴에는 역겹다는 표정이 살며시 떠오른다. 틀림없이 이성애주의자고 가족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람이다. 철저한 금욕주의자일까? 하지만 그는 술을 너무 좋아한다. 자주 밤늦게 만취할 때까지 마신다. 물론 만취를 해도 흐트러지지 않고 예의를 잘 지키지만. 마약은 절대 하지 않는다. 만약 내가 강권을 하면 그의 성격상 거절하지 못하고 함께 하기는 할 것이다. 신을 믿을까? 무신론자일까? 그는 틀림없이 유일신을 거부할 것이다. 아나키스트적이고 절대적 가치를 부정하는 회의론자이니까. 그의 내면에 어떤 불안 강박증이 숨겨져 있어서 불능이거나 불감증일까? 그는 쓸데없이 너무 순진하다. 솔직하지 못하다. 그래서 나는 너무 답답하다.

하지만 그녀는 내색하지 않았다. 유대인으로 온갖 풍상과 고난을 겪었기 때문에 나이에 비해서 충분히 성숙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당시 우리들은 커다란 갈등이나 심적 동요 없이 자연스럽게 헤어질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이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터무니없는 자기기만이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고 애썼지만 말이다.

파리에서 마지막 가을. 1988년 (그해 서울에서는 올림픽 경기가 열렸다)의 늦가을. 하늘에는 늘 먹구름이 끼어있고 가끔 부슬비가 내렸다. 하얗게 밤을 지새운 불면의 밤들과 공허한 나날들.

그러나 둘 다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고 강력한 자석처럼 서로를 끌어당기고 있었으니 그대로 헤어진다는 것은 무언가 슬픈 일이었다. 그녀는 헤어지면서 새삼스럽게 단정한 검은 머리, 반듯한 얼굴 그리고 꼿꼿한 자세로 앉아 강의에 열중하던 그의 태도를 되새겼다.

파리의 늦은 밤.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었고 밤공기는 차갑고도 축축했다. 얼마쯤 지나자 이내 가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한 시간쯤 전에 그 카페에서 페르노 한 병을 나눠 마시고 약간 취해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서로 마음이 통했고, 상당한 시간이 흘렀는데 ……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헤어지다니요……. 당신은 순수하고 낭만적이지요. 사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모순덩어리이에요. 지금부터라도 당신을 저주해야 할까요? 나는 당신의 머리와 가슴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한심한 일이…… 도대체 말도 안 되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아무런 합당한 이유도 없이 이렇게 헤어진다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용서할 수 있을까요? 차라리 퐁데자르에서 함께 뛰어내리는 게 낫지 않을까요?”

“……”

“진짜 파리를 떠날 이유가 생겼군요. 파리는 연인들을 사랑하지 않는 거예요.”

비는 내리다 말다 그쳤지만 나는 여전히 우산을 받쳐 들고 있었다. 그녀가 “우리, 한 번 안아도 될까요?”라고 말했다. 나는 몸을 숙여서 그녀와 처음이자 마지막인 포옹을 나눴다. 그녀의 숨결, 체온과 체취 때문에 숨이 막혔다. 그리고 명치끝에서 격렬한 통증을 느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우리는 울퉁불퉁한 회색빛 보도블록에 서서 서로 두 눈을 크게 뜨고 응시하다가 가볍게 미소를 짓고 돌아섰다. 다정하고 애달픈 작별 인사 같은 건 없었다. 그저 그렇게 헤어진 것이다.

그때, 퐁데자르에서, 영원한 사랑을 기원하고, 우린 절대로 헤어져서는 안 된다고 서로 맹세하며 그걸 새긴 청동 자물쇠를 시퍼런 물이 괴어 흐르는 센 강의 심연 속으로 던졌지만 그 자물쇠가 사랑의 이별을 막을 수는 없었다. 어쨌거나 이별이란 해피엔딩은 될 수 없다. 모든 이별에는 일종의 해방감과 함께 큰 고통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센 강은 흐른다 우리 사랑을 나는 다시 되새겨야만 하는가 밤이 와도 종이 울려도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사랑은 가버린다 흐르는 이 물처럼 사랑은 가버린다 나날이 지나가고 주일이 지나가고 지나간 시간도 사랑도 돌아오지 않는다

 






Comments

  • 윤원일

    역설적으로 <파리는 연인을 사랑하지 않는다>. 리얼리스트이고 냉소주의자이고 허무주의자이고 그리고 무엇보다 지독한 낭만주의자인 작가는 대체 어떤 계기로, 어떤 심정으로 이 작품을 쓴 것일까? 문득 19세기의 센 강가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2021-08-02

댓글쓰기




협회 Contact

  우) 04175

    서울시 마포구 마포대로 12, 한신빌딩 302

  전화번호: (02) 703-9837

    FAX: (02) 703-7055

  업무시간: 오전 10시 ~ 오후 4시

  이메일: novel2010@naver.com

  계좌 : 국민은행 827-01-0340-303 (사)한국소설가협회
              농협 069-01-257808 (사)한국소설가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