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제목 한민족은 어디에서 왔나
작성자 황원갑
작성일 2021-05-11 23:06:55
조회수 62

한민족은 어디에서 왔나

다시 보는 고조선연구

황원갑<소설가, 역사연구가>

 

최근 윤내현(尹乃鉉, 84) 박사의 <고조선연구> 개정판을 다시 읽었다. 윤 박사의 <고조선연구>1994년 일지사에서 처음 나왔고, 2015년 만권당에서 개정판이 나왔다. 지난 2016년 투병 중인 윤 박사를 찾아뵙고 이 책을 받아 읽었는데 최근 다시 한 번 더 읽었다.

윤 박사는 나의 고조선사 연구의 사부(師父)이다. 윤 박사는 1939년 해남에서 태어나 단국대 대학원 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하버드대 인류학과 객원교수와 단국대학교 대학원장 등을 지냈다.

윤 박사는 철저한 고증을 통해 단군왕검(檀君王儉) 고조선의 중심 영역이 지금의 북경 동쪽에 있는 난하(鸞河) 유역임을 밝혀냈다. 고조선의 통치 영역도 만주와 한반도 전역이란 사실을 밝혀냈다. 이러한 주체적 역사관에 의한 연구 성과 때문에 광복 이후 한국 고대사 연구를 주도해온 식민주의 사학자 이병도(李丙燾)와 그의 제자들, 이른바 주류 강단 사학계로부터 거센 비난과 공격을 받았다. 신화와 역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이비 역사학자라느니, 재야사학자라느니 하는 인신공격성 비난을 받았고, 북한 역사학자 리지린의 <고조선사> 일부를 인용했다고 정보기관의 조사도 받았다. 이런 자들이 사학자라고 앉아 있는 것이 한국 사학계의 현주소다.

한국사 연구에서 단군조선만큼 온갖 시련을 겪은 윤 박사는 현재 파킨슨병과 싸우고 있다.

 

그가 강단파 식민사학자들의 공격을 받은 것은 우리 고대사의 핵심 쟁점인 한사군(漢四郡)의 위치 때문이다. 윤 박사가 고증한 한사군의 위치는 식민사학계에서 진리로 통용되던 평양 일대, 한반도 북부가 아니라 중국 난하 동쪽 대릉하 서쪽이었다. 이는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 성호(星湖) 이익(李瀷) 등이 제기했던 내용이지만 우리 사학계에서는 반역적학설이었다. 식민사학계의 태두는 이병도와 신석호다. 이들은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한 친일파들로 뒤에 학술원장과 문교부장관을 지내며 사학계에 막강한 인맥을 만들었다. 일제 식민사관이 광복 뒤에도 끈질기게 이어진 이유가 거기에 있다.

조선사편수회가 날조한 식민사관은 우리 역사를 축소하기 위해 단군조선을 신화로 폄하했고, 공간 축소를 위해 한사군의 위치를 날조했다. 조선총독부의 어용학자 이마니시 류(今西龍)낙랑군의 군치(郡治)는 지금의 평양이라고 주장했고, 이병도 등이 이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완용의 조카인 이병도는 죽기 3년 전인 1986년 조선일보에 단군조선은 신화가 아닌 사실(史實)이며 고대사는 복원돼야 한다며 기존의 입장을 번복하는 기고문을 보냈다. 말년의 양심선언이었지만 그의 제자들은 여전히 식민사학을 고수하고 있다. 심지어는 이병도를 노망으로 몰기까지 했다. 이병도를 가르친 일본 학자들도 나중에 자기네 학설의 오류를 인정햇지만 기득권을 지키려는 한국 사학자들은 식민사관의 끈을 악착같이 붙들고 늘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광복 이후 70년이 지났어도 우리는 식민사관을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단재 신채호의 말처럼 역사는 민족의 혼이자 뿌리인 까닭에 식민사관의 폐해는 너무나 크다. 잘못된 역사는 바로잡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해석과 견해 차이는 불가피하다. 역사의 해석을 강단사학파가 독점하려는 풍토가 지속된다면 비운의 사학자 윤내현 박사의 비극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식민사학자들이 강단사학계를 장악하고 있는 탓에 한국사는 아직도 큰 위기에 봉착하고 있다. 혈세를 쓰는 역사 관련 국가기관들이 한국사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2009년 역사교과서에 다시 단군신화라는 말이 등장했다. 단군사화가 아니라 신화라는 것이다. 2017년에는 동북아역사재단이 혈세로 한사군의 위치를 조선총독부가 주장대로 한반도 북쪽으로 묘사한 영문판 역사서를 출간했다. 최근에는 동북아역사재단에서 국고 47억 원을 들여 <동북아역사지도>를 제작했는데, 중국의 동북공정 지도와 판박이 쌍둥이 지도였다. 한사군의 위치는 조선총독부에서 지시한 대로 한반도 북부로 그렸고, 서기 4세기에도 신라와 백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렸다. 또한 독도는 일본의 눈치를 보느라고 쏙 빼버렸다. 마치 일제강점기에 한국사 왜곡을 주도했던 조선사편수회가 다시 나타난 듯한 상황이다.

오늘은 윤 박사의 노작 <고조선연구>를 통해 단군왕검의 고조선과 한민족족의 형성과정을 다시 되새겨본다.

 

인류사회는 크게 야만시대, 미개시대, 문명시대로 나뉜다. 야만시대와 미개시대는 석기시대요, 문명시대는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이다.

고조선의 강역이던 한반도와 만주지역에는 60~70만 년 전 전기구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아왔다는 사실이 고고학적 발굴 결과 밝혀졌다. 이들은 8천 년~1만 년 전에 신석기시대로 접어들었다. 청동기시대는 약 4700년 전, 철기시대는 약 3천 년 전에 시작되었다.

고조선이 건국된 것은 청동기시대로 접어든 4500년 전이었다. 그동안 고조선을 건국한 한민족의 조상들은 중국 서쪽지역에서 이동한 것으로 전해져왔는데 이는 잘못이다. 나 자신도 1980년대 이전까지는 한민족의 조상이 바이칼호 부근에서 왔다느니, 천산산맥과 알타이산맥에서 동쪽으로 왔다느니 하는 학설에 넘어간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이었다. 그동안 고고학의 발달과 윤내현 박사 같은 주체적 역사관을 지닌 양심적 학자들의 투철하고 치열한 연구 결과 고조선의 청동기와 철기 발달이 중국 문명의 시조라는 황하문명보다 앞섰다는 역사적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구석기와 신석기시대 유물 유적들도 한반도와 만주 전 지역에서 발굴되어 고조선 건국 이전부터 이 지역에 사람들이, 다시 말해서 우리 선조들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고조선이 건국되기 이전 신석기시대 초기부터 수렵 채집하며 이동하던 인류가 정착하기 시작했고, 청동기시대가 시작되면서 국가사회 단계로 진입한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한반도와 만주 지역에서 신석기시대 초기에 정착 단계에 들어가 무리사회와 마을사회를 거쳐 정치, 경제, 사회적 독립성을 갖춘 고을나라 - 군장사회 단계에 이어 서기전 2333년 무렵 고조선을 건국했던 것이다.

윤 박사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반도와 만주 지역에서 환웅족(桓雄族) - 단군족(檀君族)이 가장 먼저 깨어나 청동기시대를 주도하여 아직도 석기시대에 머물던 웅족(熊族)과 호족(虎族) 등을 제압하고 고조선을 건국했다. 환웅족 - 단군족은 조상신으로 곰이나 범이 아니라 하느님 - 천신을 조상신으로 숭배하던 천손족(天孫族)이었다.

그런 것을 지금까지는 환웅족이 청동기를 가지고 서쪽에서 와서 석기시대에 머물던 원주민인 웅족과 호족을 제압하고 고조선을 건국했다고 잘못 알았던 것이다. 또한 고조선의 주류가 예족(濊族)이나 맥족(貊族)으로 알고 있던 것도 그들이 중국과 가까운 고조선 서쪽 경계 지역에 살고 있어서 교류가 빈번하여 중국 사서에 자주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윤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고조선의 강역은 서쪽은 중국의 난하, 북쪽은 몽골의 아르군강, 동북쪽은 흑룡강과 연해주, 동쪽은 동해, 남쪽은 한반도 남해안에 걸친 광대한 제국이었다. 고조선의 거수국(제후국)은 숙신, 부여, , , 삼한 등이었고, 고조선은 이들 여러 고을나라를 복속시켰던 대제국이었다.

고조선은 서기전 2333년 무렵 건국하여 고구려와 신라가 건국되던 서기전 1세기 무렵까지 약 2300년 동안 유지되었고, 고조선이 망한 뒤에는 부여 등 열국시대가 그 뒤를 이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한민족의 조상이 중국 서쪽에서 왔다거니, 흉노족의 일파였다느니, 주류가 예족과 맥족이었다느니 하는 설들은 모두 고고학이 발달하지 못했고, 고대사 연구가 낮은 수준이었으며, 근본적인 검토 없이 식민주의 사대주의 역사관을 답습해온 폐해였던 것이다.

한민족의 조상은 고조선 강역에 살던 원주민이었고 한민족은 고조선의 건국과 더불어 형성되었다. 이것이 우리 역사의 시작이었다.

==================================================

 






Comments

댓글쓰기




협회 Contact

  우) 04175

    서울시 마포구 마포대로 12, 한신빌딩 302

  전화번호: (02) 703-9837

    FAX: (02) 703-7055

  업무시간: 오전 10시 ~ 오후 4시

  이메일: novel2010@naver.com

  계좌 : 국민은행 827-01-0340-303 (사)한국소설가협회
              농협 069-01-257808 (사)한국소설가협회